과거 한 책을 소개하며 한 말이기도 한데, 사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란 표현은 잘못 쓰일 때가 많습니다. 우린 보통 '서로의 실력 차이가 현격히 커서 그 결과가 뻔한 승부'에 이 어구를 쓰지요.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 승리를 거둔 건 거인 '골리앗'이 아닌, 목동 '다윗'이었습니다. 즉,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란 표현은 둘 사이의 '주어진 조건'에만 포커스를 둘 뿐, 그 승부의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담아내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목동이었던 10대 청년 '다윗'은 거인이었던 '골리앗'(성경에 따르면 그의 키는 3m에 가까웠습니다.)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고대의 전투는 각 진영의 최고 장수가 나와 일대일의 겨루기를 먼저 했습니다. 이런 통상적인 방식에서 칼이나 창, 화살 등을 사용해 골리앗에 맞선다면 질 게 뻔하다는 사실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다윗은 다른 무기, 돌을 골랐습니다. 골리앗이 근처에 오기 전에 그 돌을 적장의 이마에 꽂음으로써 다윗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요.
다윗이 전통 방식 대신 자기에게 유리한 형태로 전투를 끌고 갈 생각을 한 건 작은 체격 '덕분'입니다. 아마 골리앗과 비등한 체격이었다면 애당초 그런 전략을 생각하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다윗은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골리앗을 이긴 게 아니라 작은 체격 '덕분에' 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구하고'를 '덕분에'로 바꾸는 힘은 전략에 있었지요. '주어진 조건' 아래 어떻게 하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를 골몰하는 그 전략 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와 이 글을 보고 있을 독자 분들 사이엔 정요한 정보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몇 시간 후 있을 2022년 월드컵의 한국 대 우루과이 결과이지요. 이 글을 보고 있을 독자 분들 모두가 흔쾌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셨길 (축구의 빅팬인 저로선 더더욱) 간절히 바라봅니다.
'주어진 조건'으로만 보면 한국 축구는 우루과이의 그것만 하지 못합니다. 우루과이 뿐 아니라 같은 조에 속한 포르투갈은 물론, 가나와 비교해서도 '주어진 조건'이 낫다고 말하기 쉽지 않지요. 다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보듯, 중요한 건 '주어진 조건'이 아닙니다. 이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 '불구하고'를 '덕분에'로 바꿀 것인가 하는 전략이 중요하지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지혜는 비단 축구에 한정된 얘기는 아닐 겁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쓰임새가 될 만한 이치가 이 일화엔 담겨 있지요.
다윗과 골리앗의 이치를 벤투호가, 일본이 보여준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랬던 것처럼, 보란듯이 우리의 삶에 증명해주길 오늘 밤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