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까지 200여 일간의 기록을 담은 책 <콜럼버스 항해록>엔 원주민을 처음 만난 1492년 10월 12일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적어놨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챙 없는 붉은 모자, 목걸이를 만들 수 있는 유리 구슬 등 몇 가지 물건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면서 열정적으로 우리를 환영했다. 앵무새, 무명실, 투창 같은 물건을 들고 우리 보트까지 헤엄쳐 와서 유리구슬이나 매방울 등과 교환했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무엇이든 기꺼이 내주었고, 주는 대로 받았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에게 콜럼버스 일행은 '외계인'과 같았을 겁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배를 타고 와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썼을테니 말이지요. 경계심을 갖고 다가간 원주민들에게 이 '외계인'은 챙 없는 붉은 모자와 먹걸이를 만들 수 있는 유리 구슬을 건넸습니다. 원주민들은 생각했을 겁니다. '아! 이들은 우리와 '친구'가 되려는 것이구나.'
안타깝게도 이 외계인, 콜럼버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항해록엔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들은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고, 놀라운 점은 무기가 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칼을 보여주자 아무 생각 없이 칼날을 잡아서 손을 베기도 했다. 이들은 영리하고 훌륭한 노예로 적격이다.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즉각 되풀이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콜롬버스가 가장 탐내했던 건 "황금으로 된 코걸이"였습니다.
"이 섬의 남쪽에 사는 추장이 엄청난 황금을 항아리 가득 채워 두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를 몰랐던 원주민들에게 금을 향한 콜럼버스의 욕망은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금을 손에 넣은 스페인 제국주의는 그 뒤엔 광산 전체를 약탈했고, 섬 곳곳을 살육의 현장으로 만든 뒤 그 땅 전체를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2.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0년초, 카카오톡이라는 서비스가 대한민국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카카오톡은 '외계 서비스'처럼 느껴졌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친구들에게 손쉽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존재였으니 말이지요. 우리들은 생각했습니다. '카카오톡은 짱이구나. 이 모두를 '공짜'로 제공해주다니.'
당연하게도 카카오톡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카카오톡은 우리의 순진한 접근을 놓고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각자가 엄청난 데이터를 지니고 있었는데, 놀라운 점은 데이터가 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영리하고 훌륭한 소비자로 적격이다. 카카오톡으로 확보한 개인 정보로 광고는 물론이거니와 택시, 대리운전, 주차장, 심지어 (금산분리법에도 불구하고) 금융까지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하는 이 사업 모두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즉각 돈을 지불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3.
이렇게 카카오톡을 열심히 애용하던 우리는 최근 날카로운 칼에 손을 베였습니다. 독과점이라는 칼날을 아무 생각 없이 잡았다가 겪은 일이겠지요. 이 사태로 인터넷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올랐습니다. 1년에 6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고작 배터리 1개 불타는 단순 화재로 수일 동안 먹통이 된 사실을 두고서도 여러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 시대의 지나친 기술 의존 현상도 짚어봐야 할 대목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유독 '공짜'라는 말에 대해선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는 게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카카오톡은 '공짜'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피해보상이 안 된다"라는 말에 정부도, 국회의원들도, 언론도 별 말을 하지 않습니다.
콜럼버스가 원주민에게 줬던 모자와 구슬이 과연 공짜였나요? 카카오톡이 우리에게 줬던 메시지 서비스가 과연 공짜였을까요?
카카오톡을 유럽의 제국주의 역사와 비교하는 게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일견 그렇게 느껴지긴 하나, 다만 오늘의 글은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 데우스>에 나오는 아래 구절로부터 영감을 얻었습니다.
"유럽 제국주의의 전성기에 스페인 정복자들과 상인들은 색깔 있는 구슬들을 주고 섬과 나라를 통째로 샀다. 21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값진 자료는 아마 개인적 데이터베이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이메일 서비스와 웃긴 동영상을 제공받는 대가로 첨단 기술기업에게 그 데이터를 넘기고 있다." (p.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