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엔 제가 몹시 못마땅해 하는 가게가 있답니다. 바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와 '무인 장난감 가게'이지요. 가게 주인이 '무인'의 방식으로 운영을 하는 까닭이야 쉽게 유추할 만합니다만, 제 아무리 인건비를 아낄 요량이라 하더라도 초등학교 부근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장난감 가게'는 영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단지 부모의 마음 때문만은 아닙니다.
초등학생에게 '아이스크림'과 '장난감'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지요. 이 욕망을 아이가 스스로 제어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그 옛날 아이스크림 가게, 장난감 가게 주인들이 아이들의 잔도둑질을 법의 잣대로 엄격히 들이대지 않은 까닭도 그 이치를 쉬이 알았기 때문이지요. 무릇, 초등학생이란 나이는 자기 욕망의 크기와 사회가 그어놓은 선 사이의 합일점을 찾는 시절일 겁니다. 그 옛날 아이스크림 가게, 장난감 가게 주인들의 감시와 (법 대신) 따끔한 훈계는 이 합일점을 찾아나가는 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을 테고요.
그런데 요즘의 무인 가게는 이 나침반을 내팽개치고, 그 자리에 CCTV를 달았습니다. 그러곤 아이의 잔도둑질 장면을 캡처해 가게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붙여둡니다. "형사 절차를 밟고 있다"는 무서운 경고 글과 함께 말이지요.
이들 가게는 '무인'으로써 이익은 늘리고, 위험은 회피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을 아이들의 자제력에 맡겨버리지요. CCTV의 캡처된 화면과 경고 글은 가게 주인의 리스크가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에게 외주화됐음을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이익은 늘리고, 위험은 사회적 약자에게 외주화하는 시대적 풍경이 '무인 가게' 말고도 많습니다. 사흘 전 대전의 한 대형 아울렛 화재에서 숨진 7명의 사람과 중태에 빠진 한 사람은 모두 '하도급' 노동자였다고 하지요. 한 대형 조선소에서 월 200만원을 받으며 일을 했던 '하청'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다가 원청 회사로부터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습니다. 테크 기업이 주도하는 플랫폼 경제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달기사 등) 임시직들엔 '긱 이노코미(Gig Economy)'라는 그럴듯한 네이밍이 달려 있지만, 이들도 각자의 위험을 각자가 지고 살아야 하는 건 매한가지이입니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위험을 지게 하는 무인(無人) 가게.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위험을 지게 하는 지금의 시대를 무인(無人) 사회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