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생인 우리 아이는 오늘을 2주 전부터 손꼽아 기다려왔답니다. 생애 '첫 소풍'이기 때문이지요. 시골마을체험이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반 친구들 모두가 각자의 도시락을 준비하고선 교외로 나가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다보니, 그 설렘이 보통이 아닌 모양입니다.
2학년생이 왜 이제서야 '첫 소풍'을 가게 됐을까. 독자 분들도 쉽게 추측하셨을텐데, 바로 코로나 때문이지요. 이 잔인한 바이러스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시기에 학교를 들어갔던 터라 제 아이는 소풍 말고도 못 해본 게 많답니다. 운동회도, 학예회도 사실상 제모습을 갖춘 채 해본 적이 없고, 코로나가 가장 극성을 부릴 때에는 심지어 수업과 수업간 '쉬는 시간'도 갖지 못했습니다. 시골마을체험을 가장한 이번 소풍에서도 아이들은 감염의 우려 탓에 자기 도시락만 먹어야 한다는군요.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려봤습니다. 소풍날, 햄 대신 소시지를 김밥에 넣은 엄마를 원망하며, 햄 넣은 김밥을 싸온 친구의 것을 뺏어먹던 기억. 쉬는 시간, 청소용 왁스를 공삼아 벌인 복도 축구. 박터뜨리기, 줄다리기, 이어달리기를 하다보면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갔는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해지던 가을날의 운동회. 그런 기억을 하나하나 조각하다보면, 초등학생으로 살던 때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주 전부터 소풍 다가오는 날짜를 매일같이 세던 제 아이를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초등학생의 시절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생각하면 조금 아찔합니다. 물론, 이 시절에도 아이들은 이 시절에 맞는 좋은 추억을 쌓겠지만, 그 장면 안에 기록된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있을 겁니다. 짝꿍은커녕 1인용 책상에 칸막이까지 더해진 교실 풍경은 분명히 옛날만큼 왁자지껄하진 않을테지요.
코로나의 기세가 한풀 꺾인 지금도 아이들의 추억을 방해하는 건 그득합니다. 기후위기, 미세먼지, 스마트폰 중독, 유튜브의 여과되지 않은 날영상들...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주고 있는 것일까요. 생각이 이 즈음에 이르면 자연스레 고민이 많아집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 조금 더 건강한 지구를 내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해 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집니다.
그런 고민의 크기에 비해 제 힘은 미약하고, 풀어야 할 문제는 거대해 보이기만 하네요. 우선 당장엔 제 아들의 첫 소풍이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만큼은 완연한 가을이 돼주길 바라봅니다.
구독자 분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완연한 가을 마음껏 누리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