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상을 보시면서 풀어야 할 미션 하나를 드릴게요. 영상 안에서 흰 옷을 입은 팀은 농구공을 몇 번 주고 받았을까요? 집중해서 보셔야 횟수를 셀 수 있답니다!
다 세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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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이 꽤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위 영상엔 숨은 미션이 있습니다. 영상 중간에 고릴라가 한 명(?) 지나가는데, 혹시 발견하셨나요? 이 실험을 처음 진행했던 하버드대 심리학팀에 따르면 농구공에 집중하면서 이 영상을 본 사람 가운데 고릴라를 발견한 사람은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요. 영상 한 가운데를 노골적으로 지나가는 저 고릴라를 무려 절반이나 못 봤다고 하니, 믿어지시나요? (전 안타깝게도 이 사실을 먼저 알고 영상을 접한 까닭에 오히려 농구공 횟수를 세지 못한 채 고릴라만 봤답니다.^^)
위 실험은 '무주의 맹시'(Inattentinal blindness) 현상의 대표적인 예시로 많이 쓰입니다. '무주의 맹시'란 말 그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무주의),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맹시) 현상을 말합니다. 무주의 맹시는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요. 뇌 처리의 문제이지요. 우리의 뇌가 순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는 까닭에 특정한 것에 주의가 몰리면, 그 밖의 것들은 뇌에서 시각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무주의 맹시' 현상이 비단 시각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 전 경험했답니다. 몇 달 전부터 전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하고 있는데요. 어느 날, 블루투스 이어폰 충전을 깜빡해 여지껏 음악을 들으며 탔던 자전거를, 음악 없이 타게 됐지요.
그렇게 퇴근길 안양천을 자전거로 지나가고 있는데, 그날 갑자기 꽃내음이 확 밀려오더군요. 도저히 안 맡을래야 안 맡을 수 없을 정도로 짙은 꽃냄새였는데 이어폰을 끼면서 그 길을 지날 땐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후각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됐어요. 제가 지나가던 그 길에 그렇게 많은 꽃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 경험 이후 전 자전거를 타면서 음악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참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리더군요. 바람 소리, 새 소리, 개구리와 매미 울음 소리도 들리고, 해질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도 보이고 말이지요. 과거와 똑같은 자전거길을 가는건데도, 자전거 타는 풍경이 매번 달라져 요샌 자전거를 탈 때마다 기분이 새롭답니다.
스마트폰이 쉴새 없이 알람을 알리는 세상에서 주변의 풍경에 내 오감을 내주기란 참 어렵게 됐습니다. 요즘우리 곁에 바짝 온 가을이란 계절에 관심을 갖는 것도 쉽지 않지요.
이번 주말엔 주변의 풍경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무주의 맹시'를 벗어나 주변의 가을 오는 모습을 보고, 듣고, 냄새도 맡아보면 어떨까요? 매번 보는 풍경이 새롭게 보이는 것만큼 기분 좋아지는 일도 없으니 말이지요. 🥰
아홉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