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집사 분들은 잘 아실테지만, 고양이는 가끔씩 아이 울음 소리와 똑같은 소리를 내며 웁니다. 전 고양이를 한번도 키운 적이 없지만, 이 울음 소리를 잘 알지요. 서울 밀집주택의 반지하방에 살았던 시절, 그 소리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세 평 남짓했던 제 반지하방엔 창 하나가 달려 있었습니다. 창 너머엔 그 창을 정확히 가운데로 가로지르는 담벼락이 있었지요. 저 살던 밀집주택 이곳저곳을 누비던 길고양이는 밤만 되면 제 집 창문 밖 담벼락을 가로지르며 아이 울음 소리와 꼭 같은 소리로 섧게 울곤 했습니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아이 울음 소리를 꼭 닮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제게 그 경험은 처음엔 두려움이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려 하면 어디선가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려오니, 두렵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그러던 어느 날. 창문 밖 담벼락에 비치던 실루엣의 주인공, 길고양이가 그토록 섧게 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그 후부턴 그 울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전 좀 서러워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두침침한 공간, 물먹는 하마 따위론 사라지지 않는 습기, 그 습기를 따라 피어오르던 곰팡이들. 이런 풍경에서 살아가던 당시의 저와 길고양이의 신세가 자주 오버랩되니 서럽지 않을 도리가 없더군요.
반지하방에서 산다는 건, 그래서 제겐, 고양이 울음 소리를 견디는 일입니다. 아이 울음 소리를 꼭 닮은 소리에 점점 침잠해가는 제 삶의 의지를 간신히 붙들어 매는 일이지요.
지난 폭우, 별 일 없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폭우는 많은 소식을 낳았고, 그 소식보다 더 가혹한 피해를 많은 이들에게 입히었지요. 그 많은 피해 가운데 유독 가슴이 저릿했던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된 채 목숨을 잃었지요.
비운으로 삶을 마치기 전에도 그들은 고양이 울음 소리를 견딘 채 점점 침잠해가는 제 삶의 의지를 간신히 붙들어 매고 있었을 겁니다. 그 의지를 한순간에 고립시키고, 삶을 죽음으로 바꿔버린 재난. 재난이 주는 형벌이 참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부의 상징인 '강남'에 이번 폭우가 집중된 것을 외신을 비롯해 이곳저곳이 조명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비 자체가 부촌과 빈촌을 가리진 않지요. 그 비가 입히는 피해를 감내해야 할 몫의 크기가 불평등한 것이지요. 이 불평등을 감안하면 우리가 주시해야 할 건 '강남'이 아니라 '반지하'인 건 새삼 분명해 보입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