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Editor's pick>을 고르며 인용한 문구인데, 여기에 다시 한번 적어보려 합니다. 알베르 카뮈가 그의 책 《시지프 신화》에 쓴 첫 문구입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지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기서 잠깐만 언급해 보겠습니다.
-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지난 2003년부터 지금껏 딱 두 해(2016, 2017년)만 제외하곤 OECD 국가에서 매번 1위였습니다.
-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OECD 평균의 2배 이상입니다.
-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살자수는 1만3,195명인데, 이는 오늘 하루에만 36명 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살율은 떨어지는 추세이지만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100% 이상 늘었습니다.
- 10대와 20대, 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모두 자살입니다.
- 최근 들어 자살율이 줄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비극적인 사실은 청소년의 자살율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쯤되면 우리 사회는 자살 문제를 심각한 의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 합니다.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라는 식의 말장난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던 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책의 인상적인 설명으론, 자살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음 말곤 지금의 고통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죽고 싶어 자살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도 살고 싶지만, 그 삶이 본인에게 주는 고통을 감내할 방도가 없어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 앞에 "그래도 살아야지", "죽을 그 용기로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건 그리 현명한 대답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죽게 냅두라는 것이냐"라고 되물으신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삶과 죽음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며, 그 사이엔 수많은 가능성이 있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자살 문제를 심각한 사회 의제로 다뤄야 합니다.
수주 전, 완도에서 사라진 세 가족이 바다 속에서 발견됐습니다. 부모는 스스로를 죽였고, 자기 아이를 죽였습니다. 며칠 전 가양대교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는 한 여성은 아직 발견되지 못했지만, 유언이 남겨진 그의 태블릿PC가 발견됐습니다.
물가가 폭등하고, 금리도 오르고 있습니다. 주식을 비롯한 재테크 시장은 폭락하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반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끔찍한 말이지만, 이런 시대라면 우리의 자살율은 더 올라갈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자살 소식이 들려오는데, 관음증만 넘쳐나고 정작 넘쳐야 할 사회적 성찰은 찾기 힘들어 오늘은 좀 우울한 글을 이곳에 남깁니다.
인생의 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에 아홉시가 함께 하겠습니다.